짧은 글/한 입 에세이 4

[한 입 에세이] 샌드위치

샌드위치를 그저 흔히 말하듯 식빵 두 쪽 사이에 원하는 재료를 넣어 먹는 음식이라고 정의한다면, 내가 언제 처음 그런 음식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알다시피 샌드위치 세대(Sandwich generation)라는 단어도 있듯이, 샌드위치의 핵심은 그저 양쪽에 짓누르는 식빵 두 쪽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풍성한 재료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먹은 샌드위치는 뭐랄까, 지금 내가 샌드위치를 말할 때 떠올리는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해봤자 빵 사이에 잼이나 땅콩버터 정도를 바른다거나, 혹은 샐러드보단 '사라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으깬 감자나 계란 등의 재료가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물론 그만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풍성한 한 끼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지금에..

[한 입 에세이] 오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좋고 싫음이 명확히 갈리는 작가다. 나 또한 그의 소설보다는 그가 ‘맥주 회사에서 만드는 우롱차’라고 표현한, 비교적 힘을 빼고 쓴 글인 수필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억은 멀겋게 희석되어 중학생 시절 읽었던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중 한 장면은 여전히 나의 뇌리에 명확히 남아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데이트하던 여성인 미도리를 따라 그녀의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방문한다. 미도리를 돕는 차원에서 와타나베는 그 병실에 그녀의 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된다. 입원한 채 통 식욕을 찾지 못하는 그의 상황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서 들어온 간단한 음식이 놓여있다. 갑작스러운 허기를 느낀 와타나베는 놓인 음식 중 오이를 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 아삭아삭 맛있게도 먹는다...

[한 입 에세이] 옥수수

어릴 적 나는 단 한 번도 옥수수가 전통적인 곡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뭐 당연히 한국에서 유래한 음식은 아닐 수 있겠지만, 어쩌면 중국 혹은 유라시아 어딘가에서 시작되었고 지금껏 먹어온 음식일 거라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토마토나 파인애플? 이런 작물은 딱 봐도 이름부터 서양의 향이 줄줄 난다. 종종 먹긴 하지만, 양식 요리에서나 쓰일법한 이름이다. 그에 비해 옥수수는 어떤가. 누가 봐도 친숙하기 짝이 없는 이름 아닌가. 우리는 시골에 가면 큰 솥에 옥수수를 잔뜩 쪄주는 진부하지만, 전통적인 장면이 쉽게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인도 여행 중 만난 몇십 혹은 몇백 원에 불과한 군옥수수를 먹으며, 그건 꽤 섣부른 결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옥수수의 역사는 ..

[한 입 에세이] 생선가스

돈가스 사준다는 말에 따라나섰는데 포경 수술 당했다, 알고 봤더니 치과 가는 길이었다 등등의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네 부모님의 잔혹함을 말해주는 스토리지만, 그러한 얼토당토않은 기만행위가 돈가스 하나로 용서된다는 것 자체가 돈가스의 위상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논리적으로 따져봐도 그렇다. 고기는 맛있다. 고열량 자원에 대한 갈망은 매우 전통적이면서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이다. 튀김은 맛있다. 물이 아닌 기름으로 요리하면 더 높은 온도에서 음식을 익혀낼 수 있고, 튀김옷 특유의 바삭함은 식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돈가스란 무엇인가. 바로 고기를 튀겨낸 요리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커틀릿(Cutlet), 어딘가에서는 돈카츠(Tonkatsu), 어딘가에서는 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