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좋고 싫음이 명확히 갈리는 작가다. 나 또한 그의 소설보다는 그가 ‘맥주 회사에서 만드는 우롱차’라고 표현한, 비교적 힘을 빼고 쓴 글인 수필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억은 멀겋게 희석되어 중학생 시절 읽었던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중 한 장면은 여전히 나의 뇌리에 명확히 남아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데이트하던 여성인 미도리를 따라 그녀의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방문한다. 미도리를 돕는 차원에서 와타나베는 그 병실에 그녀의 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된다. 입원한 채 통 식욕을 찾지 못하는 그의 상황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서 들어온 간단한 음식이 놓여있다. 갑작스러운 허기를 느낀 와타나베는 놓인 음식 중 오이를 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 아삭아삭 맛있게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