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 사준다는 말에 따라나섰는데 포경 수술 당했다, 알고 봤더니 치과 가는 길이었다 등등의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네 부모님의 잔혹함을 말해주는 스토리지만, 그러한 얼토당토않은 기만행위가 돈가스 하나로 용서된다는 것 자체가 돈가스의 위상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논리적으로 따져봐도 그렇다. 고기는 맛있다. 고열량 자원에 대한 갈망은 매우 전통적이면서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이다. 튀김은 맛있다. 물이 아닌 기름으로 요리하면 더 높은 온도에서 음식을 익혀낼 수 있고, 튀김옷 특유의 바삭함은 식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돈가스란 무엇인가. 바로 고기를 튀겨낸 요리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커틀릿(Cutlet), 어딘가에서는 돈카츠(Tonkatsu), 어딘가에서는 슈니첼 (Schnitzel, 엄밀히 따지면 다른 요리라고는 하지만)로 불리며 명맥을 이어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맛있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났다. 당연히 나 또한 어린 시절 어머니와 외출했을 때, 뭘 먹고 싶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돈가스를 골랐더랬다.
이빨이 조금 흔들거리면 잠깐을 참지 못하고 제힘으로 기어코 발치했던 탓이었는지, 초등학생 시절 나는 집에서 30, 40분 거리에 있는 치과병원을 종종 내원했었다. 이유가 어떠하든 병원에 가는 일은 합법적으로 바깥 음식을 요구할 수 있는 좋은 핑계였고, 어머니 또한 고문 같은 치과 치료를 견뎌낸 나를 가엾이 여기셨던 건지 꼭 그대로 귀가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곤 했다. 입안을 잔뜩 쑤셔대는 치과 도구 세례에 입맛이 뚝 떨어질 법한데도, 내 식욕은 그런 사소한 장애물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강인했다.
그날도 아마 평범한 치과 치료를 받던 나날 중 하루였는데, 평소 안 가봤었던 돈가스집을 제안하셨고 나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돈가스라는 단어에 내재한 맛의 보장에 이끌려 왔건만, 특이하게도 어머니가 안 먹어봤으면 한번 먹어보라고 권해준 것은 돈가스가 생선가스였다. 생각보다 맛있다며 말이다. 생선이라니? 육류나 면처럼 직관적이고 강렬한 맛을 좋아하는 보통의 초등학생에게 생선이란 식탁에 단백질이 부족할 때 어머니가 내오는, 축구로 치자면 실력이 조금 부족한 2군 선수단의 느낌이었다.
또한, 여기서 되짚어 봐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의 말하는 패턴이었다. 어머니가 말하는 ‘맛있다’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하나는 ‘이것은 맛과 별개로 몸에 좋으므로 너를 속여서라도 먹이고 말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은 정말 맛있어서 너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머니의 ‘맛있다’라는 말을 믿는다는 것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러시안룰렛 앞에 내 몸을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몇 안 되는 외식 기회를 건 절체절명의 기로였다.
하지만 주방장에게 ‘여기는 어떤 생선으로 생선가스를 만드느냐’라고 묻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를 경험자의 전문성을 느꼈고, 고민의 여지 없이 생선가스를 먹어보겠다고 답했다. 물론 돌이켜보면 큰 의미가 있나 싶은 질문이지만 말이다. 처음 접한 생선가스는 돼지와는 또 다른 풍미를 지닌 음식이었다. 부드러운 생선 살 덕분에 고기보다 훨씬 촉촉한 살코기를 맛볼 수 있었고, 뭣보다 기존 돈가스 소스와는 달리 곁들여지는 하얀색 타르타르소스가 참 매력적이었다. 어머니의 추천은 전적으로 옳았다.
이후에도 몇 번 친구들과 밖에서 밥을 먹을 때, 생선가스를 시도해 본 적 있으나 처음 먹었을 때의 부드러움에 비해 전혀 못 미치는 생선가스가 많았다. 특히나 가끔 학교 급식이나 직원 구내식당에 나오는 생선가스는 본연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머스타드 소스의 맛과 튀김의 바삭함에 의존하는 맛이라니! 그들은 생선가스의 명성에 먹칠을 해 잠재적 광신도가 생길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었다.
요즘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는 궁극의 돈가스를 맛보기 위해 몇 시간이고 대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전국이 열광할 만한 생선가스 맛집은 없는 걸까? 난 여전히 어딘가에서 튀겨지고 있을 최고의 생선가스를 맛보는 꿈을 꾼다.
※ 본 글은 종종 다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깁고 더해질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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