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33

[한 입 에세이] 샌드위치

샌드위치를 그저 흔히 말하듯 식빵 두 쪽 사이에 원하는 재료를 넣어 먹는 음식이라고 정의한다면, 내가 언제 처음 그런 음식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알다시피 샌드위치 세대(Sandwich generation)라는 단어도 있듯이, 샌드위치의 핵심은 그저 양쪽에 짓누르는 식빵 두 쪽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풍성한 재료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먹은 샌드위치는 뭐랄까, 지금 내가 샌드위치를 말할 때 떠올리는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해봤자 빵 사이에 잼이나 땅콩버터 정도를 바른다거나, 혹은 샐러드보단 '사라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으깬 감자나 계란 등의 재료가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물론 그만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풍성한 한 끼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지금에..

[도서 리뷰] 무진기행

무진기행 『무진기행』은 김승옥의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을 비롯하여 〈생명연습〉, 〈건〉, 〈염소는 힘이 세다〉 등 그의 대표 단편 작품 8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김승옥의 단편들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과 고뇌, 애환을 담고 있으며, 쓸쓸한 도시인의 불안과 상실감, 일탈 등을 절제된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냈다. 저자 김승옥 출판 더클래식 출판일 2017.08.15 ★★★ (*출판사마다 단편 소설집 구성이 조금씩 다른데, 저는 문학동네 출판본을 읽었습니다.) 사무치도록 아련한 허무함 타 출판사의 단편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문학동네 출판본은 소설이 출판된 순서로 엮어져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마치 시간순으로 작가와 작품의 변화 양상을 따라가는 느낌이랄까. ..

책/리뷰 2023.12.07

[도서 리뷰] 별의 계승자

별의 계승자일본의 권위 있는 SF문학상 성운상을 세 번 수상하며 큰 인기를 얻은 세계적인 SF작가 제임스 P. 호건의 대표작 『별의 계승자』. 과학이 주는 경이감을 다시 맛볼 수 있는 과학소설의 재생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 달에서 우주복을 입은 인간의 유해가 발견된다. 연대측정 결과 놀랍게도 그가 사망한 것은 5만 년 전. 온 지구가 발칵 뒤집힌 가운데 '찰리'라고 명명된 그 월인(月人)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대규모 조사단이 꾸려진다. 모든 분야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수수께끼의 해결에 몰두한다. 갈수록 퍼즐 조각은 점점 더 늘어난다. '찰리'의 동료들로 보이는 유해가 몇 구 더 발굴되고, 우주선의 잔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조사팀의 핵심 인물들은 치열한 논쟁..

책/리뷰 2023.11.23

[도서 리뷰] 허삼관 매혈기

허삼관 매혈기 - 저자 위화 출판 푸른숲 출판일 1999.02.03 ★★★ 우스꽝스럽지만 밉지만은 않은 그의 원칙 누구나 사람이라면 겉과 속이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인 '허삼관'의 특이한 점이라면 겉이고 속이고 간에 꾸밈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첫째 일락이에게 너는 내 친자식이 아니라서 국수를 사줄 수 없다고 선을 긋다가도, 결국은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주는 부정을 드러낸다든가, 불만이 생기면 면전에다 대고 그대로 표출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이 묘한 인물에 애정이 가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은 그 가족적인 모습에 마음이 동요된다. 이 책의 매력은 이야기가 꽤 침울하게 흘러갈 것 같다가도 금세 극복해 내고, 곳곳에 해학적 요소가 숨겨져 있다는 것에 있다. '이젠..

책/리뷰 2023.10.13

[도서 리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칠레의 국민 시인 네루다를 통해 문학의 진실과 감동, 시의 본질을 일깨워 주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대표작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파블로 네루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작품으로, 한 편의 시가 삶과 자연과 세계와 만나 마침내 새로운 삶과 사랑을 이끌어내는 문학의 진실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위대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소박한 칠레 민중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이 책에는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 외에도 재치 넘치는 묘사와 대화, 해학적인 성 묘사, 순수함이 빚어낸 각종 일화 등 독자를 매료시키는 요소들이 풍부하다. 사회 부조리를 진지하고 침울하게 성찰하고 고발하는 데 주력한 당시 칠레 문학과는 달리, 인간의 삶은 희로애락이 교차하..

책/리뷰 202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