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역사 동안 국가는 몇 번 아니 몇천 번도 넘게 흥망성쇠를 이룩해 왔다. 이러한 국가 간 발전과 경쟁 속에서 어떤 국가는 번성하고 어떤 국가는 도저히 발전하지 못하고 후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가 위치한 지리적 위치? 지도자의 역량? 이 책은 그 이유를 정치, 경제 제도에서 찾는다. 간단히 말해 착취적 정치, 경제 제도는 국가를 실패하게 하고, 포용적 정치, 경제 제도는 국가를 번영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다. <총, 균, 쇠>나 <이성적 낙관주의자>와 같이 읽기가 두려워질 만큼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교양서가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아주 명확한 핵심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그 예시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구성을 취한다.
모든 사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흥미로운 역사적 예시가 많다. 이를테면 착취적 정치, 경제 제도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재 상황을 뒤엎을 가능성이 있는 진보를 짓뭉개는데, 양말 짜는 기계의 도입을 꺼렸던 잉글랜드나 인쇄 기술의 도입을 꺼린 오스만 제국의 예시가 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노동자가 여기저기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노동자를 착취하기 어려울 거라며 철도 도입을 꺼리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발상이지만 그 당시 지배층에게 그것이 당연한 논리였다. 우리도 지금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하대하고 있는 기술이 있을까, 싶은 의문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 경제 제도가 모두 같은 배경에서 야기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를테면 페스트 이후 잉글랜드를 비롯한 서유럽과 동유럽의 삶이 똑같은 전염병을 겪은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그렇다. 서유럽은 인구가 부족해지자 노동자 권리가 오히려 신장하고 포용적 제도가 발전했으나, 동유럽은 기존의 착취적 제도를 강화하여 남아있는 노동자를 더 갈취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총, 균, 쇠>에서 주장한 국가 발전에 있어서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을 부정했지만, 결국 상대적으로 초기 역사 시기에는 이러한 지리적 위치가 중요했고, 근대에 들어서 이러한 제도적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논리는 꽤 매력적이고, 새겨둘 만한 내용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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