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승옥
- 출판
- 더클래식
- 출판일
- 2017.08.15
★★★
(*출판사마다 단편 소설집 구성이 조금씩 다른데, 저는 문학동네 출판본을 읽었습니다.)
사무치도록 아련한 허무함
타 출판사의 단편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문학동네 출판본은 소설이 출판된 순서로 엮어져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마치 시간순으로 작가와 작품의 변화 양상을 따라가는 느낌이랄까. 전반적으로 거칠고 명료하지 않은 느낌이었던 <생명연습>이나 <건>에 비해 뒤로 갈수록 읽기 수월해진다.
왜 김승옥이 나이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만 글을 쓰고도 극찬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단편집이었다. 그 특유의 감성과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작품이 긍정적이었으나, 리뷰 안에 전부를 담기엔 글이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아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역사>
전혀 상반된 배경에서 진행되는 두 가지 이야기를 평행하게 끌고 나가며, 자의든 타의든 도시에서 자신의 '힘'을 감춘 채 살아가는 인간을 다루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만 이야기 후반부에서 쓰인 '흥분제'란 것이 대체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닿자 쓸데없는 가정이 자꾸 피어났다. 의학적으로 인간을 흥분시킬 수 있는 약이란 건 없을 텐데. 굳이 분류하자면 카페인 정도도 흥분제라고 볼 수 있을까? 혹시 화자는 고작 박카스 몇 방울을 차에 넣고 가당치도 않을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닐까?
<무진기행>
묘하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도시에 가정을 둔 사내가, 눈으로 가득한 혹은 안개로 가득한 시골 마을로 내려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문체도 중심 줄거리도 전혀 다르지만, 그 두 작품을 관통하는 은근한 허무가 느껴졌다. 김승옥과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보고 느낀 거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딘가 부끄럽고 당당하지 못한 구석이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면 깨작깨작 글을 쓸 게 아니라 당장 입으로 내뱉었을지도.
<그와 나>
나는 꽤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거기서 저런 행동을 하면 응당 참혹한 실패를 맛봐야 하는데, 왜 저들은 그렇지 않지? 그리고 혹여나 그들이 그 아슬아슬한 시도로 얻은 성공에 의기양양해할수록 언짢음은 늘어간다. 이 작품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며 상극일 수밖에 없는 두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한쪽은 조심스러우며, 성공의 단맛보다 실패의 쓴맛을 두려워한다. 한쪽은 대범하며, 실패의 쓴맛보다 성공의 단맛을 믿고 몸을 던진다. 소위 '성공한 인간'이란 후자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대부분 전자가 되길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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