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학과 우생학을 통해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에세이
개인적인 감상일진 모르겠지만, 분류학은 꽤 따분한 학문이다. 실제로 그 학문이 따분하다기보단, 대중이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A 생물이 얼마나 계통학적으로 B 생물과 가까운지를 논하고, 이름도 형태도 너무나 낯선 생물을 무수한 갈래로 뻗어나가는 생명의 나무에 늘어놓는 일이 재밌어 보일까? '꼼장어가 사실은 장어보다는 인간과 계통학적으로 가깝다'는 이야기는 술안주 감으로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솔직히 그것보다 대중은 뇌과학과 관련된 심리적 담론이나, 무한한 우주의 신비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존재 자체가 꽤 놀라웠다. 과학 분야의 에세이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그 소재가 분류학이라는 것에 한번 더 놀라고.
왜 인기를 얻었는지 감이 올만큼 이 책은 (분류학을 소재로 한 책치고는) 매우 재미있었다. 루이 아가시로 시작하여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훑어 나가며, 분류학에서 우생학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그 안에 저자의 성장을 잘 담아낸 책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매달리게 된 계기, 다시 말해 큰 '고난'이란 것이 갑자기 벼락처럼 떨어진 재앙이라기보단 본인의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연인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눈이 돌아갔었다.) 나로서는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것처럼 구는 저자가 영 이해되질 않았다. 또한, 괜한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책이 은유하는 바대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는 인간이었다 한들, 조던을 비롯한 그 당시 분류학에 몸담은 과학자들의 노력이 무시되는 방향으로는 읽히지 않길 바란다. 과학은 늘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진 않지만, 끊임없는 의심과 검증을 통해 비틀거리며 결국에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학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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