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도서 리뷰] 가재 걸음

엘:) 2024. 7. 14. 22:19
 
가재걸음
위트로 무장한 달변가이자 세계적 석학인 움베르토 에코의 『가재걸음』. 에코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와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기고했던 칼럼과, 학회 세미나와 토론회에서 발표한 강연문 중에서 특히 정치와 대중 매체에 관련된 것들만 추려 엮은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가재걸음 치는 세계, 즉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역행하는 세계로 요약될 수 있다. 세상이 온통 새로운 천년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던 시기에, 에코는 오히려 2000년대가 보여 주는 불안한 현실을 포착해 낸다. 이 책에서 에코는 정치와 미디어 포퓰리즘이라는 두 개의 큰 줄기를 중심으로, 전쟁, 노출증, 교육, 과학, 법률, 다민족 사회, 생명, 음모론 등 수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언뜻 아무런 관련성도 없어 보이는 이런 다양한 주제들의 나열은 다방면에 뻗어 있는 그의 관심사의 발현인 동시에, 〈가재걸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조망을 가능케 한다.
저자
움베르토 에코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12.11.05

★★☆


우리는 왜 나아가질 못하는가

 

  움베르트 에코가 이탈리아 일간지와 주간지, 그리고 학회 세미나 등에서 발표한 내용을 모아 한 권으로 엮어낸 이 책은, 한 마디로 뭐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전쟁의 속성을 말하기도 하고, 미디어의 힘을 경고하기도 하고, 인종과 종교로 말미암은 갈등을 논하기도 한다. 공통점을 찾자면 이것들로 말미암아 인류는 도통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뒤로 퇴보하는 '가재걸음'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을 기억하고 이 칼럼 혹은 발표를 읽어나간다면 문제없겠지만, 읽다 보면 '그래서 어쩌다가 이 이야기까지 나온 거지?'라는 정도로까지 샛길로 새기도 한다. 또한, 그가 사용하는 비유나 은유 그리고 레퍼런스들이 우리에게는 영 익숙하지 않은 것투성이라는 점도 꽤 난점이다. 심지어는 그대로 한글로 검색하면 뜻을 찾을 수 없고, 실제 원어로 검색해야 간신히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도 있는 편이다.

  그것이 내 배경지식의 얄팍함임을 인정하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책을 읽어 나가본 경험으로는, 그래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약 20년 전쯤의 세계 정세와 문제점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문제가 여전히 그대로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시대는 변했고 각 나라를 집권하는 수장과 현재 전쟁을 치르는 국가의 이름도 변했지만, 결국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실상은 반복되고 있고, 변한 것은 이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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